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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정촌에서 토성 발견..진주성 이전에 지어졌나

2018-11-16

김성수 기자(lineline21@s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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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최근 진주성에서 발견된 토성의 흔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정촌 뿌리산업단지 내에서도 토성이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고려시대 축조된 진주성보다 더 오래된 토성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 이와 함께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 사람들이 썼던 생활유물도 3백여편도 발굴됐다고 합니다. 이도은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 기자 】
진주시 정촌면에 있는 일반 경작지에서
토성의 흔적이 발견된 것은 지난해 9월.

뿌리산업단지 조성에 앞서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에 나섰는데
옛 토기가 출토됐고
이후 시굴조사에서 성벽의 일부가 발굴됐습니다.

특히 그 아래에서는
가야시대 때 집터 흔적까지 발견됐는데
연구원들은 이를 토대로
이 토성의 역사가 가야시대 이후인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근 주변 유물조사와 연구를 마친 경상문화재연구원은
진주의 옛 지명을 따 이곳을 강주토성으로 명명했습니다.

[SU]
제 뒤로 보이는 이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언덕 같지만 실은 진주가 강주로 불리던 옛 시절, 군사적 요충지를 담당했던 강주토성입니다. 현재는 토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잔디를 심어 놓은 상태입니다.

지금은 잔디로 덮여 보이지 않지만
토성이 발견 됐을 당시에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해자와 배수로 등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 인터뷰 : 홍성우 / 경상문화재연구원 부장
- "가야시대 주거지가 먼저 조성이 되고 가야시대 유구지 (옛 토목건축 자취) 위에 토성이 쌓여져 있었기 때문에"
▶ 인터뷰 : 홍성우 / 경상문화재연구원 부장
- "가야시대 보다는 후대에 쌓은 토성이라고 볼 수 있고 이 토성의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말에서 고려시대 초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육안으로 확인되는 성의 길이는
전체 길이 450m 중 115m 정도며
나머지는 야산에 가려져 있습니다.

연구원은 이 성의 높이를 5미터로 보고 있는데
현재 남은 것은 2~3미터 정도입니다.

[CG]
성의 축조 방식은
돌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좌우로 쌓고
그 안에 흙을 일정한 두께로 반복해 쌓았습니다.
이후 보강작업을 위해 흙을 추가로 덧붙인 방식입니다.
[CG 끝]

가야시대 주거지가 발굴된 점에 미뤄
진주성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강주토성이
서부경남의 군사, 경제 주요 거점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

▶ 인터뷰 : 홍성우 / 경상문화재연구원 부장
- "상당히 중요한 지역이라고 생각이 들고 사천에서 진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항상 이 길목을 지났어야 하지 않았나"
▶ 인터뷰 : 홍성우 / 경상문화재연구원 부장
-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사천만이라든지 바다에서 들어오는 물가, 많은 어떤 교통로가 이쪽으로 집중돼..."

이와 더불어 이 일대에서는
가야부터 조선시대까지
당시 백성들이 썼던
유물 300여 편이 함께 발견됐습니다.

현재 유물 파편들은 조사를 진행한
연구원 수장고에 보관중인 상태입니다.

진주성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주토성.

우연히 발견된 토성과 유물이
진주의 옛 역사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SCS이도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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