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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뜨거웠던 100년 전 독립의 함성..다시 한번 울려퍼졌다

2019-03-18

양진오 기자(yj077@s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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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서부경남 곳곳에 3.1 만세운동을 번지게 했던 진주. 진주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것이 진주교회 타종이었습니다.
(여) 기미년 3월 18일, 진주에 울려 퍼졌던 진주교회의 종소리.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날의 종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습니다. 보도에 양진오 기자입니다.

【 기자 】
진주교회 앞에
복원된 10m 높이의
종탑.

진주 기미년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종탑 앞에
지역 학생들과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모였습니다.

낮 12시에 울려 퍼진 종소리에
정확히 100년 전 있었던
우렁찬 독립 만세의 외침이
그대로 재현됩니다.

S/U : 기미년 3월 18일, 진주교회의 타종을 시작으로 당시 재판소와 공원 등 진주 전역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졌습니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일본 헌병과 경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밤까지 이어졌습니다.

또 장날 진주 시장으로
모여든 장꾼들에 의해
서부경남 지역 곳곳으로
만세운동의 소식이
퍼져나갔습니다.

진주의 만세운동은
교인과 학생, 농민,
여기에 걸인과 기생까지
전 계층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 인터뷰 : 조헌국 / 진주교회 장로
- "(기미년 3월 18일 시작된 만세운동은) 4일 동안 연일 밤늦게까지 진주 시민들이... 말하자면 상인들이나 학생들이나"
▶ 인터뷰 : 조헌국 / 진주교회 장로
- "또 심지어는 걸인이나 기생,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만세를 불렀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뜨거웠던 진주의 만세운동은
100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이어진 릴레이 횃불로
다시 한번 붉게 타올랐습니다.

기미년 지역민들의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횃불 행진과
그 선두에 선 걸인과 기생은
진주 만세운동이 가진 독립 의지를
생생하게 표현했습니다.

이윽고 행진이 도착한 곳은
당시 경남도청이 있었던
진주성.

100년 전 가장 격렬하게
독립 만세가 외쳐졌던 그곳에서
참가자들과 이를 지켜보는 지역민 모두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습니다.

▶ 인터뷰 : 김덕석 / 경남서부보훈지청장
- "오늘날 우리는 선열들의 (독립에 대한) 염원을 한반도 평화 정착과 민족 공동 번영으로 승화시키고 지난 100년의 역사를"
▶ 인터뷰 : 김덕석 / 경남서부보훈지청장
- "토대로 새로운 희망의 미래 100년을 만들어가는 계기로 삼아야겠습니다."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가 참여했고
서부경남 3.1운동의
중심이 됐던 진주 만세운동.

100년의 세월이 흐름 지금까지
그날의 함성과 정신, 가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SCS 양진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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