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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혁명·저항의 진주 3.1운동.."시민운동의 자산"

2019-03-22

차지훈 기자(zhoons@s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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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진주 3.1운동의 시작을 알린 진주교회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여)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진주지역 만세운동의 역사적 사실과 의미, 가치에 보다 깊이 있게 접근하는 자리가 마련됐는데요. 진주 기미년 만세운동을 다시 돌아본 학술대회를, 차지훈 기자가 전합니다.

【 기자 】
100년 전, 기미년 진주 독립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진주교회 종.
이곳 진주교회에서
진주 3.1운동을 다시 돌아보는
뜻 깊은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역사진주시민모임과
진주문화연구소가 마련한 이날 학술대회에서
먼저 발표에 나선 독립기념관 이준식 관장.
이 관장은 민주공화제가
독립운동의 주된 흐름이라며,
그런 변화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3.1운동은 '3.1혁명'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터뷰 : 이준식 / 독립기념관 관장
- "현행 헌법 1조 내용이 바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돼 있는데, 똑 같은 내용입니다. 100년 전에 시작이 된 것이죠."
▶ 인터뷰 : 이준식 / 독립기념관 관장
- "그런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된 3.1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그냥 운동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본격적으로
진주의 기미년 만세운동을 논합니다.
김준형 경상대 명예교수는
진주의 뿌리 깊은 저항의 역사가
3.1운동으로 이어졌다며,
저항 거점으로서 진주의 역사와
19세기 후반 근대화 과정에서의
진주지역 저항 운동,
변화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 인터뷰 : 김준형 / 경상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저항의식이 강한 진주에도 계몽운동의 바람이 불어 닥칩니다. 사회변화에 따라 대중의식이 변하고 서구문물의 압도적인 힘을"
▶ 인터뷰 : 김준형 / 경상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인식하면서 우리도 빨리 근대화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계몽운동가들은 일제 탄압 속에서 친일과 민족적 입장을 넘나들면서"
▶ 인터뷰 : 김준형 / 경상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혼재되는 형태... "

조헌국 전 진주시 교육장은
'진주지역 3·1운동의 전개 과정'이란 주제로
관련 사료를 바탕으로
당시 상황들을 설명합니다.
보다 사실 관계를 제대로 연구하고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입니다.

▶ 인터뷰 : 조헌국 / 전 진주시 교육장·진주교회 장로
- "책에 따라서는 (진주 3.1운동이) 3월 25일에 했다든지 3월 1일에 했다든지, 이런 식으로 오기들이 나와가지고 이것을"
▶ 인터뷰 : 조헌국 / 전 진주시 교육장·진주교회 장로
- "지방자치단체에서 또 혹은... 정론을 바로 잡아 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진주 3.1운동이 1920년 전국 최초의 소년회와 1922년의 소작인대회,
그리고 1923년 형평사 창립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도 주목해 봅니다.
3.1운동 뒤에도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진주지역 주민들의 열의와 참여가
그 어느 지역보다 뜨거웠다는 것입니다.

▶ 인터뷰 : 김중섭 /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진주문화연구소 이사장
- "3.1운동 이후에 진주지역에, 1925년까지 제가 파악한 것이 60여 개의 단체가 만들어졌고 활동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놀라운"
▶ 인터뷰 : 김중섭 /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진주문화연구소 이사장
- "숫자죠. 그리고 그 중심은 청년들이 중심이었고 학생들이 중심이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특징이더라고요."

각계각층의 토론자들도
다양한 시각으로 진주 3.1운동을
다시 돌아본 학술대회.
오랜 진주의 저항의 역사와
기미년 만세운동,
그 뒤 진주 사회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까지
보다 더 깊이 살펴보며,
연구와 관련 자료 발굴 노력 등의 필요성에도
깊이 공감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SCS 차지훈입니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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