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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8) "하동 박치화 생가 복원해 영호남 독립운동 성역화"

2019-09-13

김성수(관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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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최근 하동에서는 한 독립운동가의 생가를 복원해 성역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 바로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독자적인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하동지역 3.1운동을 주도한 박치화 선생의 생가인데요. 인근 영호남 지역 만세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만큼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차지훈 기자입니다.

【 기자 】
하동읍 인근 적량면의 한 작은 마을.
붉은 슬레이트 지붕의
오래된 집 하나가 보입니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파란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마당이 수풀로 뒤덮인 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금은 버려져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한 낡은 폐가.

바로 하동 3.1운동을 주도한
박치화 선생이 살았던 집입니다.

박치화 선생은 1919년 3월 18일 하동 장날
미리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영호남 군중 1,500여명의
3.1운동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입니다.

▶ 인터뷰 : 정연가 / 하동독립운동기념사업회 회장
- "박치화 전 적량면장께서 3.1만세운동을 준비해가지고 하동 장날, 3월 18일 장날을 기해서 시장 한 가운데서 "
▶ 인터뷰 : 정연가 / 하동독립운동기념사업회 회장
- "독립선언서를 읽고... "

지역의 독립의지, 비폭력 저항 의식이 담긴
지역 유일의 독자적인 독립선언서.
독립운동가 12명의 서명 가운데
박치화 선생의 이름이
제일 먼저 적혀 있습니다.

3.1운동 뒤 수십 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이 독립선언서는
뒤늦게 박치화 선생 생가에서
그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 S/U ]
"1982년 박치화 선생의 후손들이 집을 수리하던 과정에서 이곳 밀실 천장에서 독립선언서가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하동 3.1운동의 성지와 다름없는
선생의 생가는
현재 방치돼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이에 지역에선
지역 독립운동가 예우 차원에서도
선생의 생가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특히 박치화 선생과
그의 동생, 아들 등 가족들의 독립 정신이
함께 녹아 있는 생가라는 점도 강조합니다.

▶ 인터뷰 : 정재상 /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
- "한 집에서 세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에 체포돼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12인의"
▶ 인터뷰 : 정재상 /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
- "(하동 독립선언서) 서명자들... 이 곳에서 많은 의논을 하고 당시를 고민하고 했던 장소입니다."

선생의 생가는
후손 소유의 전형적인 목조 건물이라
매입이나 리모델링 등에선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독립선언서를 중심으로 한 하동의 3.1운동은
영호남이 함께 했고, 그 영향이 컸다는 점에서
생가 복원 뿐만 아니라 영호남 독립기념관 등
다양한 성역화 가능성에도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정재상 /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
- "경남도나 인근 호남에서도 같이 협력이 된다고 하면 동서화합 차원에서 영호남 지역 독립운동가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 인터뷰 : 정재상 /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
-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을 같이 기리는 것도 굉장히 뜻 있는... "

박치화 생가 복원을 촉구하는 전상서가
하동군과 경남도에 전달된 가운데,
지자체 차원에서
관련 예산 확보와 설계 용역 등이 적극 검토돼
제대로 된 지역 항일독립운동의 성지로
거듭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SCS 차지훈입니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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