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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지역 국가유공자 우대 사업 추진

2019-06-06

양진오 기자(yj077@s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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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이 기간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와 사업들이 열리는데요.
(여) 산청에선 지역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명패달기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일상 속에서 항상 그들을 기억하자는 의민데, 양진오 기자가 6.25전쟁 참전용사의 집을 다녀왔습니다.

【 기자 】
산청군 산청읍의
어느 한적한 아파트 단지.

이곳에 오늘의 주인공
차인호씨가 살고 있습니다.

올해로 91살을 맞이한 차씨.

겉보기엔 평범한 옆집
할아버지 같지만,
6.25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한 참전용사입니다.

당시 1사단 수송부대에서
보급품을 수송하며 전국을
누볐습니다.

▶ 인터뷰 : 차인호 / 6.25전쟁 참전용사
- "그 안에는 (전쟁 때는) 언제 죽어도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죠. 발에 걸리는 것이 저쪽 인민군이고"
▶ 인터뷰 : 차인호 / 6.25전쟁 참전용사
- "우리 국군이고... 그냥 가득했어요. "

7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며
전쟁의 참혹했던 기억은
많이 지워졌지만, 휴전 협정이 체결된
무더웠던 1953년의 7월만큼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쟁이 끝난다는 기쁜 소식도 잠시,
휴전 1주일을 앞두고 치러진 전투는
그 어느 때보다 참혹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휴전 직후
적 포탄에 목숨을 잃은
전우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 인터뷰 : 차인호 / 6.25전쟁 참전용사
- "(당시) 경찰도... 최전방 경찰도 정말 수고했어요. 지금 경찰들이랑은 달랐어요. 완전히 군인이랑 똑같아요."
▶ 인터뷰 : 차인호 / 6.25전쟁 참전용사
- "그때 밥을 먹고 있는데, 포탄이 날아와서 고인이 됐죠. 몇 시간만 참아도 휴전인데..."

전쟁이 끝난 뒤
차씨는 서울에서 공직생활을 거쳐
개인사업을 하다 15년 전
고향인 산청으로 돌아왔습니다.

차씨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것도 그쯤.

전쟁으로 많은 기록이
유실되면서 국가유공자 지정에
5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겁니다.

▶ 인터뷰 : 차인호 / 6.25전쟁 참전용사
- "포탄이 날아와서 화상을 입었는데, 치료를 받을 시간이 없다보니 치료 기록이 없는 겁니다. 기록이 있어야 국방부에서 표창장이라도"
▶ 인터뷰 : 차인호 / 6.25전쟁 참전용사
- "줄 건데, 기록을 할 시간이 어디 있나요. "

고향에서 한적한 생활을
이어가던 차씨의 집을
군청과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찾았습니다.

보훈의 달을 맞아 진행되는
'국가유공자 명패 달기'를 위해서입니다.

'참전용사' 인정은 늦었지만
번듯하게 달린 명패로
이제 지역민들 누구나
차씨가 국가유공자임을
알 수 있게 됐습니다.

▶ 인터뷰 : 진홍식 / 산청군 복지민원국 복지장애인담당
- "명패 달아주기 사업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분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 인터뷰 : 진홍식 / 산청군 복지민원국 복지장애인담당
- "국가유공자에 대한 군민의 예우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산청지역에 거주하는
6.25전쟁 참전용사는 모두 217명.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186명을 더하면
지역 국가유공자는 400명을 훌쩍
넘어갑니다.

산청군은 6월 중으로
명패 달기 사업을 모두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지역 모든 국가유공자들의 집에
하나하나 부착될 명패들.

비록 작은 명패지만
유공자들에겐 자부심을
지역민들에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SCS 양진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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