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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일제 침탈 상처 남은 '태실'.."정비로 가치 지켜야"

2024-03-01

김연준 기자(kimfed@s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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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시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그 태를 봉안해 명당에 묻는데 이를 '태실'이라고 합니다. 사천에도 두 곳의 태실이 있는데요. 원래 자리에는 친일파의 무덤이 차지하고 있고, 비석과 석물의 위치가 바뀌는 등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여)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태실지를 강제로 옮기면서 생겨난 일인데요. 삼일운동이 있은 지 올해로 105년이 됐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일제에 의한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김연준 기자의 보도입니다.

【 기자 】
사천시 곤명면에 있는
단종 태실지.

태실의 내력이 적힌 비석은
깨져있고 글자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워졌습니다.

태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태실비와
태항아리를 안장하는 중동석도
원래 위치에서 밀려났습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최연국의 무덤.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에서 참의로 일했는데,
그 시점이 땅을 불하 받은 때 보다
늦다는 이유로 토지를 환수하지 못했습니다.

이곳에서 450m 정도 떨어진
세종대왕 태실지도 사정은
마찬가지 입니다.

[S/U]
세종 태실은 원래 큰태봉산
정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간인의 묘지에
자리를 내주고 현재는 산기슭에
몇개의 석물과 비석만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태실이 훼손된 건
1920년대 후반 일제가
자행한 강제 이주 때부터입니다.

[CG]
일제는 태실 관리를 명목으로
전국의 조선왕실 태실에서
태항아리와 태지석을 파내
경기도 고양의 서삼릉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날일자 형으로 담을
두르고 철문을 만들어 가뒀는데,
민족 정기를 말살하려는 의도로
추정됩니다.//

▶ 전화인터뷰 : 심현용 / 한국태실연구소장
- 왕릉은 생활사에서 죽음의 개념이잖아요. 근데 태실은 생(生)의 개념이거든요. (또) 이게 생(生)이지만 미래의 개념이 포함돼 있어요. 태를 찾아서 죽음의 개념인 서삼릉(왕릉)에 묻어서 더 이상 발전하지 말고 차단되라는 뜻으로...

남은 땅은 개인에게
팔 수 있게 해 방치했습니다.

명당에 태를 묻어
무병장수와 좋은 운명을
소망하는 문화를 실행하고
기록으로 남긴 것은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가진
특별한 문화입니다.

사천의 태실은
경상남도기념물로 지정됐음에도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

태실지 정비를 통해
그 가치를 지켜야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인터뷰 : 정서연 / 사천시의원
- 충북이나 경북은 태실지에 관해서 유네스코 등재를 하려고 행정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석물의 원형 복원이나 매향비 비각을 만들어서...

최근 국립청주박물관에서
발견된 세종대왕 태실
중앙 태석을 하루 빨리
사천으로 환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SCS 김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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