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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R-1) 충무공 이순신의 서부경남 해전

2022-08-12

김성수(관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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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최근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해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대중의 관심 또한 큰데요.
(여) 전승 신화를 기록한 장군의 해전 중에는 서부경남이 배경인 곳도 있습니다. 거북선이 처음 투입된 사천해전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입니다. 남경민 기자가 그 발자취를 따라가봤습니다.

【 기자 】
무시무시한 용의 머리와
철갑을 두른 거북의 등.

그 모습 자체로도
상대를 압도하며
위압감을 뽐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거북선.

여러 해전 승리에
크게 기여하며
현재까지도
이순신 장군과 함께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스탠드업]
거북선은 두께 10cm 이상의
튼튼한 소나무와
바닷물에도 녹슬지 않는
나무못을 사용해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충격에 강했기 때문에
돌격전에서도
활용될 수 있었던 겁니다. ///

거북선이
처음 실전에 배치된 건
1592년 음력 5월 29일.

바로 사천만에서 벌어졌던
사천해전에서입니다.

사천해전에서
거북선을 포함해
23척의 수군 함정이
10여척의 일본군 함정을
격침시키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인터뷰 : 김상일 / 사천시 문화체육과 문화재팀 학예연구사
- "그것(거북선)을 투입해서 전쟁에서 이김으로 해서 거북선의 효용을 입증했고 그 이후 거북선을 활용해서 이순신 장군이 여러 전투에서"
▶ 인터뷰 : 김상일 / 사천시 문화체육과 문화재팀 학예연구사
- "대승을 거두시는 기반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

1598년 음력 11월 19일,
남해에서는
조선·명나라 연합군과
일본군 함대의 치열했던
전투가 펼쳐졌습니다.

수백여 척의 배가 격침될 만큼
일본군에 큰 피해를 안긴
노량해전입니다.

[스탠드업]
제 뒤로 보이는 이 곳은
노량해전이 펼쳐졌던
남해 관음포입니다.

노량해전은 임진왜란 최후의
대규모 해전이자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이기도 했습니다. ///

노량해전은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조선에겐 큰 비극이었습니다.

도주하는 일본군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총을 맞은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자신의 죽음이
전쟁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란
유명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 인터뷰 : 서재심 / 남해군 문화관광해설사
- "기록을 보면 한 50척만 도망가고 나머지는 여기서 거의 전멸했다고 하거든요. 임진왜란 7년 전쟁 중에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난 곳이"
▶ 인터뷰 : 서재심 / 남해군 문화관광해설사
- "노량해전이에요. "

이순신 장군이
처음 거북선을 사용한 사천,
그리고 장군이 죽음을 맞이한 남해.

위대한 전승의 신화 속에서
서부경남 해전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scs 남경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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